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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소화해버린 멍게

Henry Kim ·

이동하지 않는 생명에게 뇌는 사치다. 예전에 우연히 본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바다를 유영하던 멍게는 적당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붙박이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스스로 소화해버린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생명체에게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는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마귀가 번식을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것만큼이나 엽기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효율적인 자연의 섭리다.

내가 이 멍게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묘하게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점차 자신의 뇌를 사용할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복잡한 계산, 지루한 자료 조사, 며칠 밤을 새워야 했던 창의적 고민들을 이제는 AI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사색하기보다 채팅창을 켠다. "GPT에게 물어봐."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현명하고 효율적인 솔루션이 되었다. 왜냐하면 AI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적 노동을 외부에 완전히 의탁해버린 인간을 과연 지성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위에 달라붙어 뇌를 먹어 치운 멍게처럼, 우리도 편리함이라는 바위에 안착해 스스로의 뇌를 퇴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뇌는 길을 찾고 공간을 매핑(Mapping)할 때 가장 활발히 발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식의 네비게이션을 AI에게 맡기는 순간, 우리 뇌 속의 해마는 더 이상 새로운 맥락(Context)을 만들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에게 남는 것은 결국 '습관' 뿐이다. 뇌를 치열하게 쓰지 않는 사람은 어제와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보다는 특유의 말투나 반복적인 행동 같은 습관의 총합이 먼저 기억나지 않는가. 외부의 거대 지능에 기대어 살아가게 된다면,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습관 덩어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AI가 보편적 지식과 평균적인 답을 내놓는 동안,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고유한 경험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자신만의 맥락이다.

나는 내가 멍게처럼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한다. 이러한 위기감은 아직 내 뇌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AI와 함께 태어나 그것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다음 세대는, 어쩌면 '내가 왜 직접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다. 편리함이 주는 달콤한 마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억지로라도 질문을 던지고 서툰 고민을 이어간다. 그것이 뇌를 가진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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