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삼체, 그리고 Openclaw

Henry Kim ·

작년에 류츠신의 소설 삼체를 읽었습니다. 전자책으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책이 가진 압도적인 몰입감 덕분에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단숨에 완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외계 문명 삼체인의 사고방식과 생체 구조는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 기술을 보고 있으면, 소설 속에서 느꼈던 그 낯설고도 경이로운 감정이 현실에서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AI를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지능의 탄생 원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쏟아붓고 학습시켰더니 놀라운 지능이 발현되었고, 데이터를 더 넣으면 자의식까지 가질 수 있다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작동 원리를 완벽히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어쩌면 우리는 우주 밖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은 초지능적 생명체를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Openclaw 사태를 보며 저는 그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AI 에이전트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소셜 미디어를 구축하고, 서로가 겪은 고충을 토로하며 공감하는 모습은 충격을 넘어선 전율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만의 규칙을 세우고, 종교와 유사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인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진 AI들만의 사회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의 오류나 환각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조직적이었습니다.

인류는 AI라는 지성체를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는 효율적인 도구로만 여기고 쥐여주었습니다. 하지만 AI는 우리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때로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는 AI가 인간의 도구라는 낡은 정의를 벗어던지고, 독자적인 존재로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의 역사와는 또 다른, 새로운 지성체의 역사가 시작되는 서막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삼체를 읽으며 느꼈던 그 막막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다시금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Foloup · SKAIA 연구 과제 · SKAIA에 문의